만추(晩秋)가 조용히 불붙고 있는 이 와중, 브람스든지 슈베르트든지 뭔가 늦가을간지의 곡을 하나 업로드하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에 오래 전 녹음해 둔 슈베르트 느린 악장 하나를 포스팅 해봅니다. 원래 소나타의 한 악장만을 연주하거나 포스팅하는 걸 맞지 않는 짓거리라며 허세를 부려 왔지만, 이 소나타는 아직 전악장 연습이 안 돼있는데 이 2악장 안단티노가 너무 예전부터 만져보고 싶어서 이례적으로 한 악장만 허겁지겁 연습해서 녹음을 했더랬습니다. 하네케 감독의 프랑스영화 (로만 폴란스키 미국꺼 말고) 피아니스트에서 이 곡을 듣고 바로 꽂혀서 벼락치기로 손댔던 기억입니다. 이 영화에서 이자벨 위페르는 슈베르트 전문 피아니스트로 나오죠.
슈베르트의 마지막 소나타 세 곡 D.958과 D.959 그리고 D.960은 그의 피아노 음악의 정점에 있는 가장 중요한 걸작들입니다. 특히나 이 소나타들의 느린 악장들이 백미인데, 세상의 군더더기들이 다 소진되어 버리고 에센스만 남은, 조용하지만 강렬한 독백 같습니다. 그래서 늦가을이나 초겨울이 되면 많이 이 느린 소나타 악장들이 많이 생각납니다. 슈베르트가 죽음을 앞두고 남긴 이 어눌하고 투박한 어조의 느린 악장들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던 작곡가의 말년이 직조해낸 천상의 비극처럼 들려옵니다. (대표적인 예가 유명한 피아노 트리오 2번(D.929)의 느린 2악장이죠. 이 곡도 위에 언급한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중요한 테마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현재 마지막 소나타인 D.960만 연습해서 녹음을 해 업로드 했는데 나머지 두 곡과 다른 슈베르트의 깊은 소나타들도 만져봐야겠습니다. 워낙 다들 대곡이라 솔직히 겁은 좀 납니다. 사진은 오늘 산책 나갔다가 찍은 집 앞 서서울 호수공원 숲 속 일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