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스케르초 2번 내림 나 단조

수년 전, 초등학교 동창이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인 이용규를 만나 수다를 떨던 중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용규: 너 요즘도 피아노 연습 열심히 해? 

나: 그럼… 사는 낙이라고는 그게 다인데… 

용규: 그래? 뭐 연습 중인데? 

나: 쇼팽 스케르초 2번 

용규: 잉? 너 그런 것도 치냐?? 


‘너 그런 것도 치냐’는 그의 리액션이 한편으론 살짝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한편으론 살짝 기분이 좋기도 했습니다. 프로의 기준에서는 아마추어가 함부로 덤빌 레퍼토리는 아니라는 즉각적인 반응이었을 것입니다. ‘너 같은 아마추어가 뭘 그런 거까지 감히 들이대냐?’는 톤은 살짝 기분나빴지만 ‘내가 뭔가 프로수준의 것에 도전하고 있구나’하는 확인은 확실히 기분이 좀 우쭐했던 것 같습니다. 


이건 규모도 크고 기교도 빡센 프로 연주자를 위한 레퍼토리가 맞습니다. 더군다나 구조도 아주 탄탄하고 빈틈이 없습니다. 쇼팽은 원래 견고한 구조를 무기 삼아 작품성을 추구하는 스타일의 작곡가는 아닙니다. 뭐 대부분의 중기 이후 낭만파 작곡가들이 다 그렇긴 하지만(브람스 제외), 베토벤에서 절정을 이뤘던 완벽한 음악적 구조의 웅대함은 낭만주의 중기에 다다르면서 즉물적이며 직설적인 감정의 표출에 음악창작의 포인트가 이동되면서 구조같은건 지난시대의 유물이자 가치관이 되어간 것이 사실이고, 쇼팽은 그 구조해체의 선두에 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스케르초 2번은 그가 작심하고 구조를 들이 파면 어디까지 능력이 되는지 본때를 보여주는 명장면인 것 같습니다. 작곡된 악상 어느 하나 그냥 1회용으로 흐르는 것이 없고, 알뜰하게 모든 아이디어들이 빽빽하게 구석구석 각자의 위치에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응용되면서 드라마틱한 10여 분짜리 서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 구조가 갖는 퀄리티와 정말 ‘스케르초’스러운 해학이 강하게 느껴지는 탓에 이 2번이 네 곡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조율을 해놓고 녹턴이니 하이든 소나타니 뭐니 이것 저것 연습이 어느 정도 완성된 것들을 많이 녹음해서 업로드하고 있지만, 사실 지난 1년은 이 거랑 ‘스케르초 1번’이랑 멘델스존의 ‘엄격변주곡’ 이 세 곡에 대부분의 연습시간이 할애했습니다. 당연히 열라 빡센 애들이니 그럴 수 밖에 없었죠. 여전히 엉망진창이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서 녹음을 한 번 업로드 해봅니다. 쇼팽 피아노 음악의 하일라이트는 너무너무 많긴 하지만, 규모나 난이도 그리고 완성도를 놓고 보면 그래도 에튀드, 스케르초, 발라드 이 험난한 애들 3총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참 소나타도 있긴하죠… 아마추어가 허덕대며 연주하는 쇼팽 스케르초 2번을 한번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어떤 프로 피아니스트의 연주에서도 맛볼 수 없는 아슬아슬한 맛이 있을 겁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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