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는 날씨가 꿀꿀하고 추워서 그랬는지 집구석에서 조금 쌩뚱맞은 짓을 했습니다. 제 악보책장 귀퉁이에 꽂혀있던 부르그뮐러 25번 연습곡을 꺼내 처음부터 끝까지 쳐봤던 것입니다. 바이엘하권이 끝나고 소나티네나 체르니 30번으로 바로 넘어가기에는 뭔가 갭이 좀 있는 것이 사실인데, 그 갭을 매워주는 역할을 했던 것은 체르니 100번이라는 옵션이 있기는 했는데, 이 체르니 100번은 정말 음악성이 없어도 너무 없는지라 정말 초급피아노 학습과정의 지루함에 기름을 붇는 격이었던 기억입니다. 그 대안으로 80년대 90년대에는 이 부르그뮐러 25번 연습곡집을 많이 활용했던 기억입니다.
부르그뮐러는 초기 낭만주의에 속하는 독일출생이면서 프랑스에서 활동한 작곡가이자 음악교육학자 였습니다. 이 25번 연습곡과 이어서 더 학습이 진전하면 도전할 수 있는 18번 연습곡이 있는데 이 두 작품 군을 제외하고는 다른 작품들은 거의 잊혀진 상태입니다.
피아노학원에서도 호기롭게 이 25번 연습곡 교육을 시작하지만, 많은 경우 이 곡집의 앞부분에 있는 ‘솔직한 마음’이나 ‘아라베스크’, ‘작은 모임’,’목가’,’사냥’ 정도만 교육을 시키고 소나티네로 도망갔던 기억입니다. 왜냐하면 뒤로 갈수록 난이도가 올라가는데 그럴거면 소나티네를 차라리 빨리 시작하면서 큰 규모의 소나타형식의 연습을 시작시키는 것이 더 낳다는 판단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이번 주말에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맨 뒤에 있는 25번 ‘귀부인의 승마’까지 완주를 해 본 것입니다. 초급에서 간신히 중급의 앞자락까지 살짝 넘어가는 난이도 수준이라 초견으로도 녹음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수십년이 지난 이제서야 이 곡집을 끝까지 쳐보면서 느껴졌던 이 연습곡집의 두 가지 교육적 혜택이 있었으니, 하나는 최초로 제목이 달린 낭만주의의 피아노소품을 다루어보면서 최초로 음악적인 표현을 시도해 보는 경험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이고, 두번째는 낭만주의 사조에 어울리게 멜로디를 살려내는 연습을 최초로 해보게 된다는 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막상 악보대로 쳐보다 보니 놀라운 점이 있었는데 악보에 지시된 빠르기 대로 연주하려면 상당히 빨리 연주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어린시절 피아노학원의 담장을 넘던 그 고사리손들의 연주 소리에 거의 2배 속도는 달려줘야 악보의 지시를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이것도 도돌이 다 지켜서 녹음해놓으니 35분이 넘어가네요…
이 작은 초기 낭만주의의 파편들을 음악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이라고는 평하기까지는 어려우나 어린 시절 피아노에 도전했던 노스탈지어를 다시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고, 제목이 붙은 표현력을 요하는 낭만주의 텍스트에 처음으로 발돋음을 했던 그 시절의 설렘을 잘 담고 있는 흑백스냅사진들 같습니다. 점점 잊혀져 가고 있는 이름이라 저라도 디지털라이즈 된 영상으로 유튜브에 아카이빙 해봅니다. 그런 빛 바랜 이름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네요… 미크로코스모스, 스즈키, 리차드 클레이더만, 하농… 날씨 탓에 이상한 업로드를 하게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