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인생에서 피아노가 어주 여려서부터 진심으로 다가올 수 있었던 데에는 몇 개의 이벤트가 큰 몫을 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먼저 핵심적인 역할을 했었던 이 노란색 카세트 테이프를 얼마 전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 오랜만에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카세트 플레이어 자체를 구하기 어려운 시절이라 이 테이프를 재생 해보는 일 자체가 어렵게 되었지만, 이 노란색 카세트 테이프는 저에게는 도저히 내다버릴 수 없는 家寶같은 아이템입니다. 이 테이프에 수록되어있던 14개의 트랙을 제 연주로 채운 플레이 리스트로 만들어 이 ‘소중한 씨앗’을 오마주 해봅니다.
아래는 제 저서 ‘피아노홀릭’에서 이 테이프에 대해 언급한 본문내용입니다.
내 피아노 인생의 모티브 3가지
내 인생에 피아노라는 악기가 나타나 명확하게 박혀버린 데에 그 원인을 찾자면 세 가지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일단 첫 번째는 필자가 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무리해서라도 피아노를 일단 집에 들여 놓으셨다는 점이다. 그 때 만해도 가정에 피아노는 ‘쁘띠 부르조아지’의 상징처럼 여겨졌는데, 필자도 학교에서 실시하는 가정환경 조사시간에 ‘집에 피아노 있는 사람 손들어봐’하는 담임선생님의 질문에 손 들을 때가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때 상황에 비추어 보아 이는 물론 필자가 아닌 필자의 누이의 교양교육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 때만 해도 [남자아이=태권도학원, 여자아이=피아노학원]이라는 이상한 마초적인 통념이 존재했다. 악기 배우기에 전혀 관심이 없던 필자의 누이가 더 이상 못하겠다며 피아노 교사와 대판 싸우고 돌아온 어느 날, 남은 반달치의 레슨비를 환불해줄 수 없다는 학원측의 통보에 따라, 필자가 남은 반달을 채우러 피아노 학원 문턱을 최초로 넘게 된 것이 내 30여년 피아노 인생의 시작이다.
피아노 음악에 본격적인 호기심이 발동하게 된 두 번째 계기는 아주 작은 것이다. 아버지가 어느 날 저녁 사가지고 오신 노란색 카세트 테잎이 바로 그것이다. 그 테잎은 ‘피아노 명곡집’에 실릴 만한 16 곡 정도의 피아노 명작들을 모아놓은 컴펄레이션 음반이었다. 필자는, 과장 없이 정말이지, 그 테잎을 수 천 번도 더 들었던 것 같다. 그 테잎에는 쇼팽의 녹턴이나 즉흥환상곡, 리스트의 사랑의 꿈, 모짜르트의 터어키 행진곡, 베토벤의 월광, 슈베르트의 즉흥곡 등등의 고금의 명곡이 명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로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피아노학원에서 허구헌날 체르니나 하농치는 소리만 들어오던 어린 필자에게 엄청난 충격이었고, 이 음악들이 연주되는 손가락의 모습은 어떨지, 악보는 어떻게 생겨먹었을지 미치도록 궁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하 생략…)
나머지 한 가지 이유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단짝 친구가 범상치 않은 피아노의 천재기질을 보이더니만 결국 유명 피아니스트(피아니스트 이용규)가 되었다, 그 친구가 그 어리디 어린 시절 우리집에 와서 피아노치는 장면을 보고 충격 먹어 대오각성하고 더욱 더 피아노에 매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뭐 그런 내용입니다.
어린 시절(7~8세 무렵?) 이 테이프 위에 스스로 제 이름을 볼펜으로 써놓은 것이 보입니다. 너무 소중해서 도둑 맞을까 봐 그랬는지 여기 있는 이 꿈 같은 레퍼토리들을 언젠간 한 곡도 빠짐없이 정복해 보리라는 열망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그 때의 어린 열망을 돌이켜보며 플리로 만들어 업로드 해봅니다. 왠 만한 곡들은 이미 녹음이 되어 있었지만 ‘군대행진곡’, ’스케이터즈 왈츠’, ’금혼식’은 녹음이 없어서 이번에 새로 서둘러 녹음을 했습니다.
A면
00:00:00 소녀의 기도 (바다르체프스카) The Maiden’s Prayer - Badarzewka
00:04:10 금혼식 (마리) La Cinquantaine - Marie
00:08:36 녹턴 9-2 (쇼팽) Nocturne 9-2 - Chopin
00:13:28 즉흥곡 90-2 (슈베르트) Impromptu 90-2 - Schubert
00:18:36 봄노래 (멘델스존) Spring Song - Mendelssohn
00:21:28 터키 행진곡 (모짜르트) Turkish March - Mozart
00:25:06 월광 소나타 (베토벤) Moonlight Sonata - Beethoven
B면
00:31:17 엘리제를 위하여 (베토벤) Fur Elise - Beethoven
00:34:03 트로이메라이 (슈만) Traumerei - Schumann
00:37:25 스케이터즈 왈츠 (발트토이펠) The Skaters’ Waltz – Waldteufel
00:47:33 사랑의 꿈 (리스트) Liebestraume - Lizst
00:52:39 유쾌한 대장간 (헨델) Harmonious Blacksmith - Handel
00:56:59 군대행진곡 (슈베르트) Militery March - Schubert
01:02:39 이별곡 (연습곡 10-3) (쇼팽) La Chanson d’adieu - Chop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