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대누나 번외] 음악 대학에 진학하기까지의 썰2

돌아왔어. 사실 썰1이 작성한지 두달 전이라 다들 까마득하게 잊은 줄 알았더니... 고맙게도 이 글을 기다려준 마피아들이 있더라고. 이게 정보글이라기에도 애매하고, 그야말로 후일담, 무용담 같은 '썰'이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열심히 읽어준 여러분에게 정말 감사해.


각설하고 시작해볼게.

썰1 복습하고 보면 이해가 더 빠르지 않을까? 클릭


2. 험난한 작곡의 길


여튼 나는 고1 느즈막히 입시 작곡을 시작하게 되었고 지방에서 서울까지 왕복 11시간이 걸리는 버스를 타고 매주 토요일마다 레슨을 받으러 다녔다고 한다. 우리 집은 편도 5시간 반씩 걸리는 완전 깡촌?이었어. (지금은 고속도로 뚫려서 조금 더 빨리갈 수 있다고...)


3년 동안 얼마나 지긋지긋하게 버스를 탔는지 머리를 대자마자 잠들고 눈 뜨면 서울 남부터미널인 스킬도 생기고 지금은 버스 특유의 향만 맡아도 신물이 날 정도니까 말 다했지 뭐. 그 땐 힘든 줄도 몰랐어. 작곡 배운다는게 넘나 신나고 + 촌뜨기가 서울 구경하는 재미로 오갔던 것 같아.



맞은 편에 롯데리아에서 치즈스틱 사먹으면서 미처 다하지 못한 화성학 숙제 풀던게 기억난다. 아련쓰.


나에게 작곡을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은 조금만 클래식에 관심이 있다면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하신 원로 작곡가 분이셨어. 음악계는 아직까지 '도제식 교육'이 존재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깍듯한 선생님 예우와 엄격한 교육 방식에 당혹스러웠고 그건 지금도 여전히 그래.


도제식 교육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작곡은 특히나 선생님과의 1:1 레슨이 중요한 것 같아. 그래서 여전히 그런 방식의 교육법이 존재하는 거고. 심지어 음대를 가도 매주 레슨을 받을 수 있는 담당 교수님이 계시거든. (작곡을 온라인 교육으로 풀 수 있을까? 요즘 고민하는 주제야.)


3. 기초부터 탄탄히!


조금만 이해가 더뎌도 불호령을 내리시던 도깨비 같은 선생님은(당시엔 그렇게 느꼈음)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친절하신 분이셨던 것 같아. 초창기에 배우던 노트를 보니까 더 그래ㅋㅋㅋㅋ 빨간펜으로 불바다가 된 노트들... '나는 정말 빠가인가' 엄청 고민했던 시기였지.



박자별 기보법에 대해서 배웠던 것 같네. 왼쪽이 틀린 기보. 겹세로줄 오른쪽이 맞는 기보.


불바다의 흔적들. 기초화성학 속7화음을 배우던 때인 것 같다.


전통 화성학은 왜이렇게 하지말라는 법칙들이 많은지 병행, 은복, 3음 중복... 빨간펜 그일 때마다 자책했다고 한다. 몇 번을 검토해도 내 눈에는 안보이는게 선생님은 왜 매번 한방에 찾으실까? 선생님은 항상 음악이 수학과 같다고 하셨어. 논리와 과학적인 부분에서 서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고. (아하! 그래서 못했구나. 나 수포자였거든ㅋㅋ)


고딩쓰 고민의 흔적들... 바보냐 -_- 가 눈에 띈다. 


여튼 그동안 꽤 나름 노력을 했고(길 가면서도 화성 진행에 대해서 고민할 정도로) 덕분에 화성 이론에 대해서는 꽤 독보적인 실력을 가질 수 있었어. 위의 사진은 아마 그 중간 단계 정도의 수준의 문제를 풀었던 것 같다. 엄청 복잡하지... 짧은 마디 안에서 내가 아는 총 지식을 뽐내기 위해서 저런 극강의 난이도 문제들이 많았어.


자, 이제 곡을 써야지. 작곡과를 가려고 하는데. 곡을 잘 쓰기 위해서는 일단

1) 기본적인 음악 이론 지식과

2) 잘쓰여진 명품곡들의 철저한 분석과 체득

3) 수많은 연습!이 필요하지.


이건 내가 쓴 곡이었네. 두 마디의 모티브가 주어지고 그걸 바탕으로 3형식의 피아노 소품을 작곡하는 것이 대부분 대학교의 입시 전형이었기 때문에 내내 이런 연습만 했었어. 발가벗겨진 기분이야. 흑역사란 이런걸까


이건 베토벤 소나타를 사보한거야. 손으로. 저 두 장을 사보하려면 빨라도 꼬박 1시간이 걸려. 아까 위에서 명품곡들을 열심히 분석해야 한다고 했지. 선생님들께서는 손으로 쓰는 것 만큼 왕도는 없다고 늘 말씀하시더라고. 그래서 마치 '필사'를 하듯 무작정 베껴댔어. 효과가 있었냐고? 메이비. 적어도 따라쓰는면서 음형에 대한 아이디어나 동기 발전에 대한 생각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


가장 크게 드는 생각은 와 베토벤은 정말 미친놈인가? 너무 잘하잖아! 심지어 300년 전 사람이야!


사진이 작아 잘 보이진 않을 것 같아 접사 한장 더 추가... 응 자랑 맞아...




지금까지 이 글을 읽어줘서 고마워. 지루하진 않았어?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아래의 사진으로 대신할게.



공부했던 수많은 교재들 + 악보들


수많은 노트들 + 그리고 냥이의 엉덩이(아 이건 아니고)


이것도 이사 몇 번 다니면서 많이 버려진 건데... 저 노트로 화성학을 공부했고, 시창/청음 연습을 했고, 작곡을 하고, 대위법을 공부했었어. 다른 동기들에 비해 아버지가 사업을 하시지도, 음악가 출신 집안도 아니고, 예고를 다니지도 않았던 나는 "결국 내 길이 아닌걸까"라는 고민을 무수히 하면서 눈물을 쏟았던 (침 아니야) 노트들이야. 


그냥 노력은 배신하지 않고, 음악은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숭고한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어. 이번 편은. 어제 노트 박스 뜯어보고 감상에 젖어서ㅋㅋㅋㅋㅋㅋ 이렇게 말하면 내가 되게 열심히 산 아이처럼 포장된 것 같은데 실은 나보다 더 열정적인 친구들이 많았고, 난 언제나 그 친구들 뒤를 쫓아다녔었던 것 같아. 마피아에 오면 종종 같은 생각을 가질 때가 많아. 대부분 취미로 시작했겠지만 어떻게하면 더 잘 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하는 그 모습이 참 멋있었거든. 


그럼 안녕!


스압이 싫은 마피아를 위한 

정리 1. 음악계는 뿌리깊은 '도제식 교육'이 존재하고, 작곡은 특히 1:1 레슨으로 배우는 교육 방식이 현재로써는 최선의 방법. 결국 좋은 선생님을 만나세요~

정리 2. 음악 이론을 공부하다보면 수학적 논리가 내재되어 있음을 알게된다. 이 정도 알면 경지에 올랐다고 봐야...

정리 3. 곡을 잘 쓰려면 1) 기본적인 음악 이론 지식 2) 잘쓰여진 곡들의 철저한 분석과 체득 3) 수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정리 4. 노력은 배신하지 않고, 음악은 숭고한 것이다. 급 마무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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