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원 정도 예산으로 디지털 피아노를 구매하시려는 분들께...

저도 쓰던 디지털 피아노를 중고로 처분하고, 새 장비를 구매하기 위해, 한동안 마피아를 비롯한 각종 커뮤니티(외국 사이트까지도)를 돌아다녀 봤는데 대체로 100만원 내외의 장비들이 인기가 높고 수요가 많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외국 사이트의 경우에도 1000불 이하의 제품들이 인기도 높고 확실히 리뷰가 많았구요.


일단, 저는 오늘 낙원상가에서 FP-30을 구매하고 왔습니다. 배송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필요없는 악세사리들 다 쳐내고 구매하니까 인터넷보다 오히려 싸게 해주시더라구요(사실 3번 정도 낙원상가 발품 팔면서 얼굴을 미리 익혀뒀습니다).


아무튼 커뮤니티와 낙원상가 발품 팔면서 얻은 정보들을 바탕으로, 100만원대 디지털 피아노를 구매하시려는 분들께 도움을 드리고자 글을 작성합니다.


지극히 제 주관적인 평가이므로 전적으로 믿지는 마시고, '이런 의견도 있다더라' 하는 참고용으로만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0. 일단 마지막으로 잡소리 한번 더

디지털 피아노를 구매하는 분들이 고려(또는 걱정)하는 부분은 단연 타건감과 음색, 음질 세 가지일 것입니다. 우리가 돈을 무제한으로 가지고 있다면, 진짜 어쿠스틱 피아노의 액션을 차용한 목건반을 쓰고, 스피커와 향판도 빠방하게 박아 넣은 제품을 사면 되겠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그럴 여건이 안되어서 100만원 정도의 제한된 예산으로 타협을 보고 싶으신 분들일겁니다.


100만원 내외의 디지털 피아노는 대부분 스테이지형 또는 슬림형이므로 스피커의 개수나 출력 등이 부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어떤 회사의 어떤 기종이던 간에 음질은 기대하기 힘들다는 거죠. 이 부분은 좋은 헤드셋/이어폰으로 최대한 커버하거나, 다른 장치, 프로그램을 통해 소리를 2차적으로 가공해주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100만원 근처의 디지털 피아노를 구매하려는 여러분들이 고려할 것은,

1. 타건감

2. 음색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저 둘도 더 비싸고 좋은 장비들에 비해서야 제한적이겠지만, 그래도 동급의 장비들 중에서는 타건감이 비교적 우수한 제품, 음색이 비교적 우수한 제품으로 어느 정도 구분을 두고, 본인이 더 중점적으로 생각하시는 부분에 맞는 제품을 고르시면 될 것 같습니다.


1. 기종 별 개인적 평가

직접 만져본 모델들에 대해서만 서술하였습니다.


I. Roland FP-30

두 번 말하면 입아픈, 마피아 내에서도 인기가 굉장히 높은 모델인 롤랜드 사의 FP-30입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저도 구매한 모델입니다. FP-30에 사용된 건반은 롤랜드의 PHA4로 롤랜드의 상급 스테이지 모델인  RD-800에 사용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RD-800에는 Concert 급, FP-30에는 Standard 급으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둘은 건반 재질의 차이이고 기본 액션 동작은 같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목건반을 제외하고는, 많은 분들이 타건감 최고! 로 꼽는 건반 중 하나입니다. 그런 건반이 100만원대 모델에 사용되었다는건, 동 가격대에서 이만한 타건감을 얻기 힘들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만, 음색은 조금 의문이 드는 모델입니다. '나쁘다'는 아니고, '호불호가 갈린다'라는 표현히 적절하겠네요. 굉장히 깔끔하고 예쁜 음색이긴 한데, 그래서 오히려 어쿠스틱 사운드에 익숙하신 분들은 큰 어색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음색입니다. 아무래도 신디사이저 등 전자 악기가 주력인 회사이다 보니 디지털 피아노에 들어가는 음도 그런식으로 깔끔하게 합성하여 넣은 듯 합니다.


추천: 깔끔하게 잘 가공된 타건감과 음색을 선호하시는 분


II. KORG LP-380

제가 FP-30을 구매하기 전에 2년 넘게 사용했던 모델입니다. 스테이지형은 아니고 슬림형 콘솔 피아노입니다. 그래서 공간을 덜 차지하고, 뚜껑이 있어 관리도 용이하다는 소소한 장점이 있죠. 출시된지 3년이 지났지만 현재도 충분히 경쟁력 있다고 생각됩니다.  일단 LP-380도 타건감이 우수한 편입니다. LP-380에 쓰는 코르그 사의 RH3 건반은 코르그의 고급 스테이지 피아노 모델인 SV-1에도 사용되는 모델입니다. 위에서 설명드린 롤랜드 FP-30과 비교하자면, FP-30의 타건감은 굉장히 잘 가공되고 섬세하게 다듬어진 여성적인 느낌이라면, 코르그 LP-380은 그에 비해 묵직하고 조금은 둔탁한, 남성적인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쳐보면 건반을 처음 누를 때 손이 받는 무게감이 상당해서, 오히려 롤랜드 제품보다 더 실제 피아노에 가깝다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음색은 좋게 말하면 특징적, 나쁘게 말하면 이질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의 롤랜드와 마찬가지로 코르그 사 역시 전자 악기가 핵심인 회사라 그런지, 전자적인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는 음색입니다. 롤랜드처럼 전자적으로 잘 정제되고 깔끔한 느낌과는 다른, 굉장히 뾰족하고 카랑카랑한 느낌의 소리가 납니다. 정말 누가 들어도 이건 전자음인 것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특징적인 음색입니다. 싸구려 느낌은 아니니까, 전자음도 괜찮으시다면 그런 쪽으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추천: 100만원대 디지털 피아노에서도 묵직한 타건감을 느끼고 싶으신 분


III. Kawai ES-100

가와이/카와이는 원래 어쿠스틱 피아노를 주력으로 생산하는 회사입니다. 그 때문인지 디지털 피아노에서도 음색과 타건감 모두에서 상당한 수준을 보이는 회사기도 합니다. 콘솔형 제품들은 고급형이건 중급형이건 나쁜 평가를 찾기 힘든 회사이기도 하죠. 스테이지형인 ES-100도 음색은 나무랄데가 없습니다. 롤랜드나 코르그에 비해 훨씬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의, 셋 중엔 제일 어쿠스틱에 가깝다고 볼 수 있죠.

타건감도 조금 가볍긴했지만, 덜그럭거리지 않고 부드럽게 잘 눌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앞에 말씀드린 두 제픔보다 떨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중저가 스테이지형 피아노 중에서는 물론 우수한 편에 속하지만, 워낙 타건감이 우수한 제품들이 저가 모델에서도 많이 나오다보니 ES-100의 타건감이 특출날 것이 없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출시된지 3년이 넘은 제품인데다, 사용된 건반도 가와이 라인업 중 최하위(AHA-IV 건반)다보니...


추천: 솔직히, "난 지금 당장 무조건 가와이의 스테이지 모델을 사야겠어!"가 아니라면 타 모델을 사거나 잠시 보류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왜냐하면, ES-100의 상위 모델인 ES-110이 외국에서는 이미 출시되었기 때문입니다. ES-110의 브로슈어를 보면, ES-100보다는 한 단계 위인 중급형 건반(RH III)을 스테이지형에 맞게 경량화(RHC, C는 Compact)하여 채용했다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ES-100보다는 좋은 타건감을 가질 것 같습니다. 낙원상가에서 RH III 건반을 사용하는 가와이 모델도 쳐봤는데, 확실히 ES-100보다는 나은 타건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수입사에 문의해본 결과 ES-110의 수입이 계획은 있으나 아직 확정된 일정이 없는 관계로(샘플 제품도 아직 못받았다고 합니다 ㅠㅠ) 구매 가능 시기는 장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IV. 야마하 P-115

야마하는 아마 모든 제조사 중 가장 다양하고 폭넓은 제품 라인업을 가지고 있는 회사일겁니다. 그리고 어쿠스틱 쪽으로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는 회사이다 보니, 역시 음색면에서는 굉장히 우수합니다. 듣기에 좋고 깔끔하면서도 이질감은 적은, 괜찮은 음색을 가지고 있죠.

디지털 피아노의 라인업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야마하는 건반의 급도 매우 다양하게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중저가 모델에서는 단점이 됩니다. 당연히 낮은 급의 건반을 쓰니까요. 여러 사이트를 돌면서 P-115의 타건감에 대한 평가를 봤는데, "저는 이 정도도 괜찮아요." 이상의 좋은 평가는 보기 어려웠습니다. 실제로 쳐 봐도, 앞선 모델들에 비하면 덜그럭거리는 소음도 심하고 힘이나 무게도 빈약한, 심하게 말하면 장난감 느낌의 건반이었습니다. 그래도 음색이 훌륭하고, 이 글에서 언급한 모델들 중에는 가장 저가에 속한다는 걸 생각하면, 참작해 줄 여지는 있습니다.


추천: 더 적은 예산으로도 좋은 음색과 일정 수준의 타건감을 원하시는 분


V. 카시오 PX-160, PX-350, PX-360M. PX-5S

카시오 모델은 왜 이렇게 많이 썼냐하면, 가격대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어쨌거나 다들 100만원 안쪽의 모델들이고, 동일한 건반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카시오도 고급형 모델에는 목건을 사용해 타건감도 우수하고, 그랜드 피아노 브랜드와 합작으로 좋은 소리를 샘플링해서 괜찮은 평가를 받는 제품이 있긴 하지만, 솔직히 중저가형 모델은 잘 모르겠습니다. 음색은 특출나지 않습니다. 딱히 나쁘지도 않지만 좋을 것도 없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타건감도, 카시오의 타건감이 무게감이 느껴져서 좋다고 평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제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그 무게감이라는 것 빼고는, 야마하의 저가형 건반(P-115에 사용된 GHS)보다 나을게 없었습니다. 오히려 무게때문에 건반을 칠 때 힘이 더 들어가서, 덜그럭거리는 소음이 더 심한 듯한 느낌도 받았습니다. 동가격대의 타사 제품들에 비하면 많은 기능들을 제공하고, 다양한 버튼, 터치 LCD를 채용한 모델 등 사용자 편의를 위해 노력한 요소들도 많아 좋은 "전자제품"임에는 확실했지만, 좋은 "악기"인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의문이 많았습니다.


추천: 개인적으로 카시오의 중저가 모델은 비추. 직접 만져보고 결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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